신미소 | 기자 작성일 2026년 03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한 단계적 개헌 추진 의지를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1987년 헌정 체제(이하 '87체제')의 구조적 한계 극복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대통령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다는 건 야당도 맨날 하던 얘기 아니냐"며 단계적·부분적 개헌 추진을 공식 제안했다. 5·18 광주항쟁과 부마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포함해 △지방자치 강화 △계엄요건 강화 등 이견이 적은 사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도 반대하지 않으실 것 같다"며 정부 차원의 공식 검토를 지시했다. 다만 4년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과제로 남겨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1987년 개헌이 권위주의를 종식하고 민주주의의 토양을 다진 역사적 전환점이었다"며 "이제는 진정한 국민주권 국가를 완성하고 AI 기술혁명 시대의 가치까지 담아낼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화답했다.
"38년 묵은 87체제, 수술 불가피…권력구조 개편이 핵심"
법조계에서는 87체제의 구조적 한계가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39년간 헌법이 멈춰 있는 사이 기후위기·인공지능·디지털 기본권·저출생·지방분권 등 시대적 과제들이 헌법 밖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크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헌법은 20세기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21세기적 개헌을 하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야 한다"면서도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려 하면 나라 전체가 개헌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핵심 조항의 부분개헌을 먼저 추진하고, 권력구조 개편 등 본격적인 작업은 순차적으로 이어가는 접근법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조재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대통령이 제안한 내용들도 당연히 반영돼야 하는 것들"이라면서도 "권력구조를 손대지 않고 가는 건 개헌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권력구조의 민낯으로 진단하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부통령이 존재했다면 계엄에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도 5년 단임제가 아닌 4년 중임제였다면 계엄을 통한 집권 시도 대신 국정을 잘 운영해 재신임받는 길을 모색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개헌 현실화엔 야당 협조 필수…"강력한 리더십 발휘해야"
이 대통령이 직접 개헌 의지를 천명하면서 개헌 동력이 살아날지 주목되지만 현실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200석의 찬성이 필요해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야당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구성 제안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6·3 지방선거가 77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야권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개헌 카드를 꺼낸 데 대한 진정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조 교수는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수십 년간 쌓여 왔고,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말이 울림 있을 시기에 논의를 추진해야 한다"며 "지지율이 높을 때 오히려 개헌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제대로 끌고 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