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 기자 작성일 2026년 09월 2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 육군 부지에 22억달러(약 3조원)를 투입해 탄약 생산 거점을 세운다. 지난 1월 미 육군의 부지 임대 사업자로 선정된 지 8개월 만에 현지 사무소를 열고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파인블러프 아스널에서 현지 사무소 개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는 21일(현지 시간) 미국 아칸소주 육군 기지인 파인블러프 아스널(Pine Bluff Arsenal·PBA)에서 현지 사무소 개소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역 인사들이 대거 자리했다. 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 세라 허커비 샌더스(Sarah Huckabee Sanders) 아칸소 주지사
- 조던 길리스(Jordan Gillis) 미국 육군 시설·에너지·환경 담당 차관보
- 휴 맥도날드(Hugh McDonald) 아칸소주 상무장관
- 브루스 웨스터맨(Bruce Westerman) 하원의원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1월 미국 육군이 공모한 파인블러프 아스널 부지 임대 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번 사무소 개소는 탄약 생산 거점 조성 계획을 실제로 옮기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파인블러프 아스널은 어떤 곳인가
파인블러프 아스널은 아칸소주 파인블러프 인근에 자리한 미 육군의 탄약·화학방호 장비 생산 기지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1년에 설립됐다. 미 육군은 노후화된 유기적 산업기반(Organic Industrial Base)을 현대화하기 위해 민간 기업에 기지 내 유휴 부지를 장기 임대하는 강화이용임대(Enhanced Use Lease·EUL) 방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한화디펜스USA와의 계약도 이 틀에서 진행됐다.
미국이 해외 방산기업에 육군 부지를 내준 배경
미 육군이 운영하는 탄약 공장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기에 지어져 설비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다. 최근 몇 년간 우크라이나 지원 과정에서 155㎜ 포탄 재고가 급감하자 미 국방부는 탄약 생산 기반을 현대화하고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파인블러프 아스널 부지 임대 사업 공모는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으로, 동맹국 기업이 미 육군 기지 안에서 직접 탄약 생산 시설을 짓는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유일의 155㎜ 포탄용 추진장약 생산 기업으로, 원료 합성부터 추진장약 제조까지 일관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수직계열화 역량이 미 육군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155㎜ 포탄 구성품과 추진장약 생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부지에 155㎜ 포탄 구성품 및 추진장약 생산시설을 건설한다. 신규 시설에는 원료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탄약 생산 전 과정을 수직계열화한 통합 제조 체계가 갖춰질 예정이다.
155㎜ 포탄은 미군을 비롯한 서방 진영 야포의 표준 탄약으로, 최근 수년간 유럽 안보 위기와 중동 정세 불안을 거치며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질렀다. 미국은 155㎜ 포탄 월간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계획을 추진해 왔지만, 추진장약과 에너제틱 소재(폭약·추진제 원료) 공급이 병목으로 지목돼 왔다. 한화의 신규 시설은 바로 이 구간을 겨냥한다.
회사 측은 신규 생산시설이 미국 내 탄약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노후한 탄약 산업 기반을 현대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7년간 22억달러 투자, 일자리 400개 창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7년에 걸쳐 22억달러를 투자해 탄약 생산 거점 '한화 첨단 제조 캠퍼스(Hanwha Advanced Manufacturing Campus)'를 조성하고, 약 400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월 임대 사업자 선정 당시 알려진 투자 규모는 약 13억달러, 고용 규모는 약 200명 수준이었다. 이번 개소식을 계기로 공개된 투자액과 고용 계획은 당초 발표보다 크게 늘어난 셈이다.
아칸소주 역시 부지 선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주정부는 지난 18개월간 주 내 후보지 답사, 한국을 찾아 경영진과 면담, 파리·판버러 에어쇼에서의 협의 등을 이어가며 한화와 긴밀히 협력했다.
앨라배마 자주포 거점과 함께 '두 축' 구축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미국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회사는 미국 육군과 기동전술화포(Mobile Tactical Cannon·MTC) 사업의 K9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계약은 시제품 6문을 우선 공급하고 이후 12문을 추가할 수 있는 구조로, 미 육군의 시험평가를 거치면 본사업 규모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에는 시제품 조립·통합 및 시험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앨라배마의 자주포 거점과 아칸소주의 탄약 거점을 두 축으로 삼아 미국 지상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동시에 한미동맹 공고화에도 적극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대표이사는 "한화의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투자 및 고용 창출 등을 통해 미국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며 "향후 미국 탄약 산업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양국 방산협력 확대에도 적극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의 미국 방산·조선 투자 확대
이번 탄약 거점은 한화그룹 차원의 미국 투자 확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한화그룹은 2024년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을 통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하며 미국 조선업에 진출했고, 미 해군 함정 정비(MRO)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지상 방산 분야에서 앨라배마 자주포 거점과 아칸소 탄약 거점이 더해지면서 조선·화포·탄약을 아우르는 미국 현지 생산 포트폴리오가 갖춰지는 모습이다.
방산업계에서는 미국이 자국 내 생산과 공급망 안정을 중시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현지 생산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기업이 향후 미 육군 조달 사업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MH 시제품 공급 계약과 탄약 거점 조성을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것도 이런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일정과 과제
한화디펜스USA는 이번 사무소 개소를 시작으로 부지 설계와 인허가, 시설 착공 등 후속 절차를 순차적으로 밟아 나갈 예정이다. 투자 기간이 7년에 걸쳐 있는 만큼 생산시설은 단계적으로 들어서게 되며, 현지 인력 채용과 협력사 생태계 구축도 함께 진행된다.
다만 미국 내 방산 제조업은 국방 관련 규제와 안전 기준이 엄격하고 숙련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과제도 적지 않다. 아칸소 주정부가 18개월에 걸쳐 유치 활동을 벌인 만큼 인력 양성과 인프라 지원 등에서 주정부와의 협력이 사업 성패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기업 소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코스피 012450)는 한화그룹의 방산·항공우주 핵심 계열사로,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항공기 엔진 등을 생산한다. 폴란드, 호주, 루마니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지로 K9 자주포와 천무 수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글로벌 지상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굳혀 왔다.
실적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회사가 지난 7월 발표한 2026년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9조원대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분기 영업이익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유럽 지역 K9·천무 추가 공급 계약이 실적에 반영된 결과다.
한화디펜스USA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법인으로, 미 육군을 대상으로 한 화포·탄약 사업과 현지 생산 기반 확충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파인블러프 아스널 탄약 거점은 미국 내 방산 제조 생태계에 직접 뿌리를 내리는 첫 대규모 생산 투자라는 점에서 향후 한화의 북미 사업 전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