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 기자 작성일 2026년 06월 0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이 9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에 참석해 한일경제연대 청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한일 협력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실행력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이 한국과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경제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은 9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에 참석해 양국 정·재계 인사들과 한일경제연대 실현 방안을 폭넓게 논의했습니다.
닛케이가 주최한 첫 한일특별세션
이날 행사는 일본의 유력 경제 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주최하고 SK와 최종현학술원이 기획했습니다. ‘견고한 한일 관계를 뒷받침하는 다각적 경제 협력’을 주제로 양국 정·재계 인사 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닛케이포럼은 닛케이가 아시아 공동체의 공존·발전을 모색하고자 ‘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내걸며 1995년 시작한 행사입니다. 30년 가까이 이어지며 아시아 각국의 정상급 인사와 글로벌 기업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표적 경제 담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해는 최 회장의 한일경제연대 구상에 뜻을 같이하며 포럼 역사상 처음으로 한일특별세션을 별도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와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일 우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시다 전 총리는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두 나라 관계를 위해 공급망, 에너지, AI 등의 분야에서 경제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며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수도권 집중, 고령화 등의 사회문제를 푸는 데도 양국 협력은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시장 경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은 세계적 격변기에 서로의 손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며 화답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영상 축사에서 “정부는 양국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한일특별세션을 계기로 양국 협력 발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복잡해지는 국제정세 속 한일의 지향점”
최 회장은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고문(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 가토 마사히코 미즈호은행 행장과 ‘복잡해지는 국제정세 속 한일의 지향점’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2024년 한일경제연대를 처음 제시할 때 들었던 당위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해졌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가 구조적 저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점, 1995년 이후 쌓아온 자유무역 질서가 관세장벽과 수출 통제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호르무즈해협 사태로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이 현실화됐다는 점입니다.
최 회장은 한일경제연대에 대해 “한일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룰 메이커(Rule Maker)’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라며 이러한 현안들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특히 △에너지 △AI △고령화 대응을 대표 사례로 들며 “두 나라가 여러 사회문제를 마주하며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가운데, 한일경제연대는 성장과 저비용 구조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에너지·AI를 핵심 축으로 한 ‘빅 텐트’ 구상
최 회장이 이날 제시한 핵심 메시지는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상설 협력 플랫폼, 이른바 ‘빅 텐트(Big Tent)’ 구축입니다. 일회성 회담이나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양국이 지속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에너지 분야에 대해서는 “에너지 산업 구조가 유사한 두 나라가 구매, 도입, 비축 등에서 협력하면 협상력을 높이고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동 이외 지역의 에너지 공동개발, 첨단소재와 대체 배터리 공동연구, 나아가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에너지 분야에 함께 진출해 국제 표준 형성을 선도하자는 구상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AI 분야에서는 데이터 공유와 공동 인프라 개발, 규범 표준화를 통해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한일이 제3의 축을 형성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양국 재계가 더한 무게
이날 대담에 함께한 일본 측 인사들도 한일경제연대 구상에 힘을 보탰습니다. 도쿠라 고문과 가토 행장은 실무 차원의 기업 협력 사례를 언급하며 “실무적 협력을 발전시켜 한일경제연대를 구체화하자”고 최 회장의 제안에 힘을 실었습니다.
행사에서는 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최고경영자(CEO)가 한일 연대를 통한 경제 공동 번영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유혁 노무라종합연구소(NRI) 서울 대표는 한일이 함께 주도하는 ‘AI 경제권 클러스터’를 양국 협력 아젠다로 제안했습니다.
김완종 SK AX CEO와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고니시 요코 일본 경제산업연구소(RIETI) 수석연구원, 야나세 다다오 NTT 부사장은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 속 한일 협력 필요성 및 과제’를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특히 김 CEO와 야나세 부사장은 SK그룹과 NTT의 AI 전환(AX) 경험을 소개하며 AI 데이터센터, 제조 AI 등 최 회장이 강조한 한일 간의 AI 협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모색해 주목받았습니다.
박상규 SK그룹 일본총괄(사장)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 한일경제연대가 두 나라 생존을 위해 가야 할 길이라는 공감대가 넓혀지고 있다”며 “올해 첫 한일특별세션 개최를 계기로 AI, 에너지, 저출산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 두 나라 미래세대가 공존·발전하기 위한 한일경제연대를 구체화하는 데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습니다.
한일경제연대 구상의 흐름
최 회장의 한일경제연대 제안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동안 여러 국제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이 유럽연합(EU)과 같은 단일시장형 경제협력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꾸준히 제시해 왔습니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양국이 단독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만큼, 시장과 자원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자는 것이 구상의 핵심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을 포함한 한·미·일 협력 플랫폼으로 논의를 확장하며, AI 시대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공동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왔습니다. 이번 도쿄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은 이러한 구상이 일본 경제계와 정치권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업 소개
SK그룹은 에너지·화학, 반도체, 정보통신, 바이오 등을 핵심 사업으로 영위하는 국내 대표 기업집단입니다. 최근에는 AI와 반도체, 친환경 에너지를 미래 성장 축으로 삼아 글로벌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종현학술원은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뜻을 기려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지정학·과학기술·에너지 등 미래 의제를 연구하고 국제 담론을 이끄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일특별세션 역시 학술원이 SK와 함께 기획·주도하며 민간 차원의 경제 협력 논의를 한층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